본격적인 여름, 화이트 와인 조명해 보기 3편 - '피노 그리/그리지오, Pinot Gris/Girigio'

한 때 북미를 강타했었던 피노 그리지오, 그 특성과 스타일

여름의 무더위가 비교적 빨리 찾아오고 있는 올해, 그리고 드디어 실외 요식영업이 허용되면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맥주나 화이트 와인을 주문하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지난 글에 이어 화이트 와인 특집으로, 이번에 조명을 해볼 품종은, 대략 10년전쯤의 여름에 북미 대륙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화이트 와인이 있었는데, 바로 피노 그리/그리지오 (Pinot Gris/Grigio)다.

 

기원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가 워낙에 강한 인상을 남긴 탓에, 특히나 북미에서는 피노 '그리지오'라는 이름이 원형으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 품종은 피노 느와의 돌연변이로서, 최초 발현지는 프랑스 부르고뉴로 추측된다. 피노 그리지오는 프랑스 이름의 피노 '그리 (Gris)'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대략 12세기 중세시대에 피노 느와의 돌연변이로 껍질색이 변화하며 갈라져 나온 피노 그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찰스 5세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나름 각광을 받았으나, 다른 포도 품종에 비해 불안정한 수확량에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안정적인 재배를 위한 클론 품종이 개발 되면서, 다시 널리 재배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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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 중 가장 유명한 산타 마게리타 피노 그리지오. (핑크 피노 그리지오를 최초로 화이트 와인으로 양조한 곳이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산타 마게리타 웹사이트 <https://santamargheritawines.com/wine/pinot-grigio/>

 

특징

 

간단히 말하자면, 마치 레모네이드처럼 호불호가 적고, 여름에 쉽게 마실 수 있는 스타일이다.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재배되는 피노 그리지오가 이런 면을 보이는데, 높은 산도로 청량함을 끌어내는 경우가 많으며, 적절한 시트러스와 열대과일향으로 쉬운 접근성을 자랑한다. 바로 이전 글에서 소개된 쇼비뇽 블랑과도 약간의 유사성을 보이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피노 그리지오 쪽이 좀 더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며, 쇼비뇽 블랑처럼 독특한 야채/잔디 향은 발견할 수 없다.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아예 얼음을 섞어 샹그리아 처럼 드시는 분도 있을 정도로, 단편적 일 수도 있지만 선명하고 깔끔한 색채를 보인다. 이탈리아를 포함, 캘리포니아나 몇몇 뉴질랜드의 생산자들이 이런 방향성을 따른다.

 

물론 이에 대비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피노 그리. 대체적으로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피노 그리/그리지오들이 위의 이탈리아 스타일처럼 이른 추수로 산도를 유지하고 과한 과실향을 지양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알자스는 가을의 중반까지 최대한 추수시기를 늦춰 전체적으로 더 강렬한 풍미를 갖추고, 훨씬 둥근 느낌 (roundness)이 강조된 와인이 만들어진다. 잘 익은 배와 멜론, 스파이스, 꿀같은 향이 특징적이다. 알자스 외에는 독일이나, 오레건 지역이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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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도멘 슈크럼베르거 피노 그리 "레 프린스 아베"

이미지 출처: 거 클레멩 온 와인 (Gus Clemens on Wine) <https://www.gusclemensonwine.com/domaines-schlumberger-pinot-gris-les-princes-abbes-2014/>

 

페어링

 

음식 페어링에 경우 위에 소개된 두가지 스타일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된다. 청량한 이탈리아 스타일이라면, 사실 음식이 없어도, 혼자 꿀꺽 들이킬 수 있을 정도로 마시기가 편해서, 거의 무반응 (non-reactive)스타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디에다가 가져다 붙여도, 나름의 역할을 하거나 음식의 풍미를 살해하지 않는 (혹은 와인의 풍미가 크게 침범 당하지 않는) 만능적인 면모를 보인다. 다만, 흠이 있다면, 그만큼 큰 감흥이나, 이렇다 할만한 감상 포인트가 없다. 조금 더 안좋게 표현하자면, 음식은 음식, 와인은 와인대로 제 갈길만 가는 느낌.

 

하지만, 알자스 스타일이라면, 약간의 숙고가 필요하다. 와인이 기본적으로 더 많은 풍미와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소스나 마리네이드의 사용으로 음식의 세세한 부분을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의외인 점이 있다면, 해산물과는 그닥 궁합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어설프게 해산물 (날 것이나 구운 것 모두)을 같이 먹으면 보통 비린 맛이 더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향의 스타일리쉬한 피노 그리라면, 달콤하고 감칠맛이 있는 소스에 조려진 닭요리나 혹은 돼지고기가 좋은 페어링을 보여준다. 점심으로 폭찹이나 그릴드 치킨 샌드위치를 추천할만 하며, 삼겹살을 구울 때 같이 내는 것도 크게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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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페어링 중 하나인 콕 어 뱅 (Coq au Vin) - 한식의 닭도리탕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지 출처: 스니펫 오브 파리 (Snippets of Paris) <https://snippetsofparis.com/coq-au-vin/>

 

이탈라이의 피노 그리지오의 유명세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단순한 여름와인으로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지역적인 차이 뿐만 아니라, 생산자들 사이에도 스타일 차이가 많이 드러나는 것이 이 품종이다. 사실상 형제라고 할 수 있는 피노 느와도 말 그대로 지역, 생산자에 따라 같은 품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프로파일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피노 그리/그리지오의 경우도, 두가지 다른 스타일을 한 번에 비교해가며 마셔보면, 흥미가 배가 될 수 있으니, 특히 야외 바베큐 때 같이 마셔보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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