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계절별 인상적이었던 데일리 와인
각 계절에 가장 잘 어울렸던 와인 중 특히 가성비로서 조명 받을만한 것들은 무엇일까
시간이 흐른다는 말 조차 무색하게, 2021년은 어느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판데믹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듯 한 희망섞였던 작년 말에 비해, 온타리오주는 다소 맘에 안드는 시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는 비교적 긍정적 반응들이 나오고 있으니, 참으로 달콤씁슬한 신년의 시작이다. 씁쓸함 보다도 달콤함을 배가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오늘의 글에는 계절별로 가성비를 포함해서 인상적이었던 와인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고, 자세한 리뷰를 남겨볼까 한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10-20달러의 가성비 와인들이 점차적으로 사라지는 상황에서, 20달러 안팎의 가격대의 와인들이 오히려 보물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2021년 봄:
- 퀴베 장 필립 크레망 드 리무 (Cuvee Jean Philippe, AOP Cremant de Limoux 2018) - 18달러95센트
- 아이 (Eye) - 페일 투명, 레몬 컬러
- 노즈 (Nose) - 골든 애플, 레몬 필, 아몬드, 들꽃 향기.
- 팔렛 (Palate) - 입안을 상쾌하게 하는 높은 산도와 미듐 바디. 마이크로 버블과 함께 느껴지는 과실향과 토스티함이 펑펑 터진다.
크레망 드 리무는 프랑스의 그 어느 크레망 중에서도, 샴페인과 가장 가까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지 않는가 하는 게 내 의견이다. 프랑스 남부의 토착 품종인 마우작 (Mauzac)을 기반으로 샤도네 (혹은 약간의 셰닌 블랑)을 블렌딩 해서는 내는 것이 리무의 크레망이다 (마우작을 90%이상 블렌딩하면 '블랑퀫 드 리무 [Blanquette de Limoux']로 불린다). 마우작은 비교적 늦게 익으면서도, 높은 산도를 유지하는 독특한 품종이라, 그 덕분인지 몰라도, 마우작이 대부분의 구성을 차지하는 블랑퀫의 경우에는 2차발효에서 나오는 철제 (Iron) 풍미가 약간 나기도 하는 등, 조금 러스틱한 편이다. 하지만, 샤도네가 적지않은 구성을 차지하는 크레망으로 오면 은은한 꽃향기와 과실향이 배가되며, 스타일리쉬한 와인이 만들어진다. 이제 막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봄에 따서, 해산물 샐러드나 덮밥과 함께 먹으면, 마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같은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일품.
2021년 여름:
- 부쉐 페르 & 필, 플루리 (Vaucher Pere & Fils, AOP Fleurie 2018) - 18달러95센트
- 아이 (Eye) - 퍼플 코어, 핑크 림
- 노즈 (Nose) - 체리, 오랜지 필, 플럼, 장미, 약간의 후추 및 흙내음.
- 팔렛 (Palate) - 경쾌하고 높은 산도, 미듐 마이너스 바디, 낮은 타닌 하지만 상당히 화려한 풍미. 상질의 가메이 품종이 갖춰야 하는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프랑스 보졸레 지역은 가메이 품종을 중심으로 한 가볍고 신선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예시: 그 해 추수된 포도를 바로 출시하는 보졸레 누보), 모든 보졸레가 그런 건 아니다. 물랑아방 (Moulin-A-Vent)이나 모르공 (Morgon)같은 보졸레 산하 작은 산지에서 더 특색있는 가메이를 만들어내는데, 이들이 바로 보졸레10대 퀴리 (Cru)로 생산자에 따라서는 웬만한 부르고뉴의 피노 느와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도멘 필립 파칼레가 만드는 쉐나 [Chena]의 경우는 60-70달러 대를 호가하기도 한다). 플루리도 그 10대 퀴리중 하나로, 이 생산자는 아주 수려한 스타일의 가메이를 만들어냈다. 너무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향이 부족해서 공허하지도 않은 은은한 매력을 발산하는데, 살짝 차게 해서 (섭씨 11~12도 수준) 마시면, 여름 레드와인으로 제격인 와인이다. 간장마늘-로즈마리에 절인 구운 닭다리와 최적의 페어링을 보여줬으며, 아이스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햇살 쨍한날 캠핑 와인으로 마시기에도 좋은 와인일거라 확신다.
2021년 가을:
- 기어박스 샤도네, 캘리포니아 (Gearbox Chardonnay, AVA California 2018) - USD 17달러 (CAD 26달러 예상)
- 아이 (Eye) - 골든 코어, 옐로우 림
- 노즈 (Nose) - 사과, 파인애플, 허니듀, 버터, 바닐라
- 팔렛 (Palate) -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바디감과 젖산발효에서 오는 버터향이 온 입안을 휘감는데, 마지막에 남는 미듐 플러스 산도가 다시 한 번 파인애플을 떠올리게 하며, 비강에서는 바닐라가 뿜어져 나온다.
마신 것 자체는 레스토랑에서 시켜먹었기 때문에, 그다지 싸지는 못했지만, 소매가격으로는 충분히 데일리 와인으로 접근할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샤도네 이다. 파워풀한 캘리포니아 샤도네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마지 자도르 향수의 진한 색깔처럼, 매혹적인 골든 컬러가,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의 색채와 매치가 잘 되었으며, 버터-스카치 캔디 같은 달콤한 듯하면서 안락함을 자아내는 것이 서늘해져가는 가을 날씨에 적절하지 않나 싶다. 갖구운 브로이쉬 번에 담은 햄버거와 함께 한다면, 푹신한 안락의자에 담요를 덮은 것 같은 편안한 궁합니 생성된다. 할 수만 있다면, 가을 등산에 정상에 올라서 마신다면, 감동의 순간이 연출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1년 겨울:
- 보데가스 아탈라야 라야 알만사 (Bodegas Atalaya Laya Almansa 2018) - 17달러95센트
- 아이 (Eye) - 퍼플 코어, 핑크 림
- 노즈 (Nose) - 블루베리, 블랙베리, 백후추, 오렌지 피코 차, 바닐라 힌트
- 팔렛 (Palate) - 높은 탄닌과 바디감, 15%로 알콜이 쎄지만, 견고한 구조감과 그만큼 밸런스를 이뤄주는 산도, 비강에서 다시 한 번 노즈의 향들이 배가되는 놀라운 피니쉬
스페인 남부, 발렌시아 시 남쪽 알만사 지역의 와이너리로, 그로나슈와 모나스트렐 블렌드로 만든 와인인데, 정말 대단한 가성비를 보여준다. LCBO에서도 18달러이며, 본토에서는 고작 5.6 유로다. 하지만, 여느 30-40달러 비슷한 블렌드의 와인에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은 훌륭한 잠재력을 보여준다. 이 곳 와인들은 해발 700-1,000m 의 고지대에서 재배 되는데, 남부의 따스하고 강한 햇살을 여과없이 받아들여서 그런지 몰라도, 와인자체가 매우 양성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강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 겨울에 마셨던 이 와인의 가성비라는 버프에 겹쳐서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은가 싶다. 달콤함 풍미를 지닌 갈비찜같은 음식과 최고의 궁합을 보인다. 눈 쌓인 한겨울 밤에, 달큰한 소스의 고기를 씹으며 한 모금 들이키긴 참으로 위로가 될 와인.
수십년만에 강한 인플레이션에, 이 와인들이 올해에도 여전히 낮은 가격대에 머물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올해는 온타리오가 주류세를 좀 낮춘다고 하니, 많은 토론토의 와인 애호가들은 거기에 희망을 걸어볼만 하다 (사실상 LCBO에서 파는 술 가격의 거의 절반가까이가 세금이다). 올해에도 독자 모두에게 좋은 와인과 음식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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